16. 그때 하나님 ! 【 그때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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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1-12 12:34 조회 1,679회 댓글 0건본문
▩[ 그때 하나님 ]▩
▩ 본 내용은 인류의 조상으로 창조된 아담 해와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하므로, 하나님께서 심중에 깊이 간직하셨던 내용을 말씀하신 내용이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시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대상 입장에서, 사람한테 사랑 받고 싶어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사람한테 걸었던 그 기대와 희망이 얼마나 크셨는가를 알게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만드신 그원리와 원칙과 질서와 순리의 법도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
● 나는 타락할 때 그때의 하나님이요. 나는 그 순간부터 멈췄어요.
죽었어도 죽어도 없어질 수 없었고 없어지지 않아도 움직일 수 없고 그 상태로 지금까지 왔어요. 나를 살려주는 사람이 올때까지요.
그때 창조도 중지되고 시간도 중지되고 모든 것이 중지됐어요. 나와 사람과의 종적인 줄이 끊어졌어요.
아담한테 대답하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됐으니까요. 대답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주체였지만 대상되고 싶어서 대상되기 위해서 사람을 만들었는데 사람이 나를 버렸어요.
내가 대상되기 위해서 종적인 힘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사람을 만들었는데 종적인 힘이 끊어져서 모든 것이 멈췄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상태요.
나는 악의 결과를 종적으로 받을 수 없었어요.
횡적인 사랑을 종적으로 받게 되어 있었는데 나하고 관계없는 횡적사랑을 나한테 보내니까 나는 받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대상이니까 대상은 주체로 부터 오는 사랑의 힘으로 살려고 했는데, 그 주체를 지금까지 하나님으로 생각해 왔지만 아니였어요.
하나님이 대상되고 싶어서 주체로 사람을 만들었어요. 나는 대상이니까 주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주체로 만든 사람이 대상 됐어요. 주체의 자리를 버리고 대상 위치에 갔지요.
그래서 나는 새로운 주체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죽었어요. 사람이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부터가 잘못됐어요.
사람이 대상이라고 하면 주체를 찾아야 하는데 그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보이는 하나님을 찾았으니까요.
자기 자신이 주체이면서...
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람을 만들 때 다 줬어요. 사람을 만든 후부터 나는 사랑을 받는 대상되고 싶었던 거예요.
주체된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한 번도 받지 못하고 멈췄어요.
주체는 투입하면 또 받아야 투입하는데 투입만 하다가 대상 입장에서 받을려고 했는데 한 번도 못 받았어요.
그래서 나는 주는 사랑은 알아도 받는 사랑은 하나도 몰라요. 주고받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주는 것은 알아도 받는 것은 몰라요.
이제 사람이 주체가 되어 나한테 사랑을 주면 나는 사랑을 받을 수 있어요.
그때 사람은 받는 사랑은 다 받았으면서도 주는 사랑은 몰라요.
사람은 모든 사랑을 다 받고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받지 않는거와 같이 생각해요.
내가 모든 것이 중지되는 것과 같이 사랑도 사람속에서 다 멈췄어요.
멈춰버렸으니까 사랑이라고 몰라요. 움직여야 힘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데 그리고 살 수가 있는데 사랑이 멈췄으니까 죽었으니까 몰라요.
나도 사람을 만들때까지는 능력도 있고 주체로 서서 사랑도 줄 수 있었는데, 다시 주체로 설려고 해도 다시 주체로 서서 창조하려고 해도,
사람이 새로운 주체를 맞이 했기 때문에, 새로 창조할 수 있는 힘도 없어졌죠.
사랑을 받는 그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는데 투입만 하다가 끝났어요.
그렇기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예요.
이것은 원리가 아니예요.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투입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멈춰요. 투입하면 돌아오는 것이 원리예요.
희망과 기쁨이 있어야 투입할 수 있죠. 그때 잘못 됐으니까 투입하고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원래는 아니예요.
투입하면 돌아오는 것이 원리예요.
오늘 이렇게 나와서 말을 할 수 있는것도, 사람이 주체로 서서 나를 대상으로 말을 해줄 수 있는 희망이 보이니까요.
나는 사랑받지 못한 것이 한이예요. 그 한이 멈췄어요.
사랑이 움직이지 않고 멈추는 것이 나의 한이요. 내가 원래줬던 사랑을 찾아서 사람이 사랑의 주체로 서면 좋겠어요.
나는 욕심이 많아요. 남자가 서면 내속에 있는 여자의 마음이 한이 풀리고, 여자가 서면 내속에 있는 남자의 마음이 만족해요.
여기에서 더 빨리 이룰 수 있는 내용은, 나를 주체로 세우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세웠던 잘못된 주체를 버리고, 본인이 주체 위에 서세요. 주체가 되려면 힘도 능력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도 잘못된 거예요.
나보다 잘났다고 해서 대상 위치에 갔으니까 사랑을 주는 사람이 주체요. 사랑을 받는 마음이 대상이예요.
사람은 모든 사랑을 다 받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이 타락이예요.
내 사랑은 자연이요. 자연의 사랑은 느끼기가 힘들어요. 영원을 생각하고 주는 것이 내 사랑이니까요.
영원을 생각하고 주는 사랑이 참사랑이고요.
순간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해서 순간의 사랑을 원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영계가 바꿔져야만 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을 했지만, 영계가 바꿔질려면 사람이 주체로 서서 바꿔져야만 대상인 영계가 바꿔지게 돼요.
지금까지 사람이 주체이면서도 새로운 주체를 세웠던 결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주체인 영계가 바꿔지기가 어렵죠.
당신들이 찾고 있는 하나님은 사람이예요. 나는 사람이 아니고, 나는 사랑을 받고 싶어서 말씀으로 사람을 만들었어요.
이제 당신들은 대상의 입장에 설려고 하지 말고 주체의 입장에 설려고 하면 빨라요.
죄 벗는 주체, 성장하는 주체, 사랑에 대한 주체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내 속에 있는 죄의 주체를 없어지게 하고,
내가 주체가 될수 있도록 하고, 항상 대상 입장에 서 왔기 때문에, 또 다른 주체 누구를 그 자리에 세울려고 하니까 주관받게 되는거요.
지금까지는 영계를 주관했던 자가 육계도 주관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항상 대상 입장에 서왔기 때문에, 그 권을 넘어가지 못했어요.
내 속에 있는 다른 주체를 빼버려야 돼요.
그것이 바로 죄이고 죄의 원인이였으니까요.
그때 완전한 대상이 서게 되면 완전한 주체도 설 수가 있었어요.
천사장이 그 위치에서 책임 분담을 다하게 되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천사장으로 될 수가 있었어요.
천사장도 하나님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나까지 주관하고 싶어서 하나님 되고 싶었던 거예요.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내 사랑이였는데, 그것을 사랑으로 못 받아 들였죠.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설명해도 모르니까요.
대상 되고 싶은 하나님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어요. 힘 있고 능력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원했으니까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예요.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주체의 그 사랑을 알게 되니까 사랑을 느끼지 않으면 그 사랑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래서 성장 과정에서의 시련도 다 사랑이였는데, 그것이 참사랑이고 영원한 사랑이였는데,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으로 느꼈지요.
시련을 이기는 것이 나한테는 사랑을 받는 것이였어요. 그러면 발전하니까요.
사랑을 멈추면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자꾸 발전해야 사랑을 느끼게 되어 있고 영원히 발전해야 참사랑이죠.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승리해야 발전하게 되죠.
순간적 사랑은 발전이 없어요. 느낌도 순간이고요.
나는 사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왔어요.
하나님을 사랑의 주체로 삼아서 받는 걸 원했고, 사탄을 하나님으로 삼아서 사랑받는 걸 원했으니까요.
그것을 투입하고 투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진짜 기쁨이라고 하는 것도 잘못됐어요.
그것은 진짜 사랑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예요. 혼자만의 자기 만족이라고 하는 거요.
투입하면 돌아오는 것이 원리예요.
원리라고 하면서도 한의 원리밖에 몰라요. 투입만 하면 사랑이 멈추기 때문에 한이요. 희생을 미덕이라고 하는 것도 잘못이예요.
진짜 희생은 결과 즉 열매가 있는 것이고, 열매가 없는 희생은 혼자 만족이요. 사탄의 원리요.
승리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련도 있고, 고통도 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승리하고 발전할 때, 기쁨을 느낄 수 있어요.
시련을 많이 느낄수록 사랑의 힘도 기쁨의 농도가 큽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자연의 사랑이예요.
그것을 악의 결과로 만든 사탄이 하나님으로 되었기 때문에, 원래는 시련도 고통도 희망이 있는 시련이고 고통이였는데,
희망없는 시련과 고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시련은 있어도 발전하지 못했어요.
사람은 똑같은 발전이 없는 것이라면, 시련이 없는 것을 원하죠.
그래도 시련이 없으면 발전이 없고 시련을 통해서 발전한다고 하면 시련도 희망이고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원리의 관념도 다시 생각해봐야 돼요. 지금까지의 원리는 사탄이 만든 원리요.
한의 하나님이 만든 원리를 원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이 주체로 계시다는 원리에서, 하나님이 대상으로 서고 싶다는 원리로 새로 정립해야 된다 그 말이요.
지금까지는 한의 하나님을 찾아왔으니까, 사람이 대상의 위치에 있었죠.
한의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사람이 대상에의 위치에 있었죠.
그 자체가 한이요.
원래 하나님이 사랑을 느끼고 싶어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대상 위치에 서고 싶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그 뜻이요.
한쪽에서는 그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생활과 관념은 사람이 대상 위치에 서있는 거요.
지금까지 한마디 말씀도 할 수 없고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그 희망이 힘으로 나오게 되었으니까요.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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