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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애 공부와 실천내용

13. 영계해방후에 나타나는 실체결과 사례내용 6) [자녀(아들)의 장애문재와 삶이 바뀌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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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1-12 12:23 조회 1,325회 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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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서,  가미노 게이꼬 ]입니다.


   저희 가족은 남편과 딸, 아들 그리고 저, 네 식구입니다.

  우리 부부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매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애들을 보살필 여유도 없이 살고 왔습니다.

  아들이 3살 검진을 갔을때, 말이 좀 늦는 편이라고 보건사가 얘기했습니다. 


  얘기를 듣고보니 늦은 것 같기도 했으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곧 말을 할수 있겠지...! 라며 느긋한 마음이었습니다만, 이때부터 아이의 성장상태를 의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으로 힘든 사회속에서 살아 나갈 것을 생각하여 특별히 보호받는 환경보다 

초등학교는 보통반에 다니게끔 하였습니다.


  장남의 병의 상태는 가벼운 지적 장애 (IQ 70정도)이고, 자폐증을 겸한 발달장애입니다. 

초등1때는 말을 거의 못했습니다. 2학년부터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은 거의 따라갈수 없었기 때문에 수업시간 중에는 찰흙을 가지고 만지작거렸습니다. 

친구는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자주 가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서 잘 가르쳐주는 학원이 집 가까이에 있어서 그곳에서 유일하게 

공부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중학교는 어떻게 할까? 정말 고민했습니다. 수업은 더 더욱 따라가지 못하겠지, 

이지메(왕따, 따돌림)를 당할수 있을 것인데...힘들것이라고 예상해서 이번에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갈수있는 시설을 갖춘 중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집 가까운 보통학교에 가고싶어 했습니다.


  장해자 지원이 있는 학교는 수업이 적어서 역사나 지리, 생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로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공립중학교에 입학하기로 했습니다. 

친구도 없고, 수업도 거의 따라가지못하면서도 매일 학교는 다녔습니다. 


  유일하게 사회와 과학과목 시간은 좋아했던것 같습니다. 물론 성적은 좋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중1학년때 담임이신 수학선생님께서 특별히 우리아이 수준에 맞추어서 잘 지도해주셨기 때문에 

수학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보기에는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서서히 이지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3학년이 되면서 몇명 불량 아이들의 눈에 찍혀 이지메 당하는것이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자주 멍이들어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본인은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3년때 고등학교 수험을 앞둔 12월달에 아는사람 소개로 영계해방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드리는 기간중에 학교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청소시간에 불량그룹 아이들을 피하면서 도망치는데, 불량그룹 아이들이 뒤쫓아 

수영장 가까이까지 몰고가서 발로차서 넘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치어 다리는 피투성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콘크리트로 된 수영장 벽에 머리를 박을 뻔 했습니다. 


  거기에 부딪치기라도 했으면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학생들도 그누구도 말리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은 무서워서 어쩔수 없는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일을 알고 저는 화가 났습니다. 경찰에 신고해서 사건으로 취급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어떤선생님은 다른 불량아이들에 둘려쌓여 꼼짝할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선생님도 변명을 하여 자기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알면 알수록 유감스러웠습니다. 


  경찰서에 왔다갔다 하며, 학교 현장검증에 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생활인데다 더 더욱 바빠지면서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기도할 시간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영계해방할 때가 아니다. 

  이번에는 인연이 아닌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해방받은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런 시간조차 만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영계해방에 대한 의식이 차츰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소개하신분으로부터 매일같이 긴 문장의 메일이 왔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의식을 가져야 하는가..등 선생님으로부터의 어드바이스도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점점 저의 마음이 변해갔습니다. 

  역시 이것밖에 없다! 지금 해방밖에 없다 !고.. 그때 조금만 잘못 되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 아이를 죽이고 싶은 억울한 영이 우리가정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고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 정도로 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해방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이지메한 아이들에 대한 억울함을 계속 안고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잘못 선택해서 그 중학교를 다니게 한것, 아이에게 정말로 죄송한 마음으로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영계해방쪽으로 다시 마음을 돌리고, 이번 사건을 잘 넘길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해가 열린 2009년 1월에 영계해방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의 환경이 정말로 달라졌습니다. 

  언뜻 보기에 잘 안되는 것처럼 보이고 더 이상 안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해방을 받고 먼저 고등학교 수험이 다가왔습니다. 

  사립, 공립 다 보았지만 다 떨어졌습니다.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아이가 다니던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아무도 가지않는 좀 먼곳에 있는 학교인데, 

  정원미달로 좋은학교가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학교선생님들도 잘 이야기하지 않고 이지역과도 별 연관이 없는 학교였습니다. 

  더군다나 마감날짜가 얼마 남지않아 가깝스럽게 응모하여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1차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학교가 우리 아이를 받아주었습니다. 

  

  들어가보니 아이에게는 정말 좋은 학교였습니다. 

 ‘어려움이 있을때에는 언제든지 말해’ 담임선생님은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금 작은 이지메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바로 담임이나 교장선생님이 잘 대응해주셔서 큰일로 번지지않고 해결되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마음 써주시는것도 중학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상치 못하고 일어나는 일에 잘 순응하지 못하는 아이의 자질을 잘 알고, 

입학때부터 아이가 적응할때까지 선생님은 수업전에 다른방에서 그날 시간표를 

미리 알려주어 예습을 시켜주셨습니다. 좋아했던 역사, 사회, 과학은 성적이 올라갔습니다. 

세계사는 반에서 일등하고 10단계 평가에서 10을 받았습니다.


  항상 1과 2정도였는데 꿈만 같았습니다. 수학도 수3이라는 어려운수업을 선택하여 정해졌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할 일들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많이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알고 어떻게하면 앞으로 전진할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책과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는 삼국지라는 두꺼운책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읽을수 없는 한자가 많고 의미가 통하지 않아서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뭐라도 읽고싶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먼저 만화에서 대강 스토리를 파악하고 그후에 한번더 도전해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하여 여하튼 읽을수 있을정도로는 되었습니다.

  

  3학년이 되고 다음 진로를 생각할때가 왔습니다. 

우리부부는 잘되어 전문학교 정도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면담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때 귀를 의심할정도의 일을 들었습니다.

  ‘M군은 성적이 좋으니까 추천하는 대학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으니까 그림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N예술대학이 좋을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지금 학교에 그 대학을 졸업한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수험과목으로 과제로 나온 그림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미술의 하나에서 열까지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라고 하여 친절하게 지도해주시고 

여름방학에는 먼곳에서 세번이나 집까지 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대학생활은 ‘즐겁다!’ 고 소리내어 말까지 했습니다. 

  정직한 성격이라서 열심히 하여 반에서도 신뢰를 받는 모양이었습니다. 

  일년에 한번 작품전에 참가하는데, 

같은 반 아이들이 ‘M군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디에 가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것이 당연했는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어울리고 있는것이 확실히 보였습니다. 정말로 기뻤습니다.

  대학을 나오면 다음은 취직이 문제입니다.

  갈곳이 없으면 저희가 운영하는 가게(레스토랑)일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할수있다면 한번은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졸업후 곧바로 취직하려고 면접도 보곤했지만 어려웠습니다. 

  취직준비를 지원해주는 ‘장애자취업지원센타’ 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거기에 다니면서 취직할 곳에 제출하는 ‘ 자기소개서’ 를 어드바이스를 받으면서 썼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놀라웠습니다. 자기자신을 정말로 잘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이런이런 특징이 있으니까, 이럴때에는 이러이렇게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7항목으로 알기쉽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취직이 되어 올 여름 8월16일부터 서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책을 제일 좋아하는데 책에 둘려쌓여 일하게 되어서 대단히 만족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의 나의 아이가 어렸을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설마 아이의 인생이 이렇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장애자 학교를 나와서 작업소에서 일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친구한명 없었던 아이였지만 가끔씩 만나는 친구도 생겼습니다.

  정말로 인생의 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모습으로 출근하는 아이를 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때 미루지 않고 영계해방을 할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앞날이 밝게 열려져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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